나른나른한 마룻바닥
용과 역사의 뒤에는(1) 본문
"'인간들이 나를 부를땐 용이니 신이니 뭐니 하는 여러 이름들이 있다.
때로는 재앙의 화신으로, 때로는, 행운의 여신으로 여러 모습들로서 기억되고 있다.
문제는 말이지. 나를 지칭할 수 있는 이름이 없기에 나는 수많은 단어들 중 용으로서 불리고 싶다고 나름대로 말하고자 한다. 흔히들 자신의 이상을 지켜주는 용사와 어감이 비슷한 게 맘에 들기 때문이라는 말이 안되는 고집 덕분이다. 사실 한가지 이유가 더 있지만 이 이유는 그 존재와의 약속이며 지금 말하려고 하는, 조금은 시간을 가지고 들려줄 이야기이기 때문에 천천히 말할 것이다. 그렇다, 내가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용사라 불리던, 그 존재의 일생이다. 하나 덧붙여 지금 이 소리를 듣거나 혹은 보고있는 상태의 누군가가 나의 존재를 알아보고 생각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나에게 줄 수 있을 것이다.'
라는 내용이 서문으로 써있는데 어쩔래, 읽어볼래?"
도서부 회장이 이상한 책을 발견한 듯 하다.
원래 도서부라는 것이 도서의 관리,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부서지만 고서적 수집이라니 너무나갔다고 생각한다. 그래도 이 책은 나의 흥미를 돋구는 신기한 아이였다.
보는 자의 뇌에 직접 투영되는 신비한 느낌의 책이라니... 과학으로서 설명되는 부류의 책은 아닌 듯 보였다.
"어디 한번 내놔봐."
"어이, 어이 이 책은 힘들게 구한거야! 자그마치 10만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산 비싼책이라고?!"
"알고 있으니까...! 이 몸께서 친히 읽어봐주시겠다는 거잖아."
"소..손대지마... 읽어보라고는 했지만 빌려줄 수는 없다고... 이 책이 내게 얼마나 대단한 책인데! 이제부터 나의 보물 1호라고!"
"아니 어제까지만 해도 보물 1호는 이 도서부 부실 열쇠라고 한 주제에... 얼마나 책에 감명이 깊었으면... 아 됐으니까 오늘 하루만 빌려주라. 안되면... 자 이거.. 이거 정도면 그럭저럭 형에게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고 생각하는데?"
기분이 살짝 나빠진 나였지만 그 정도의 가치는 될거라 생각하고 몰래 비상용으로 남겨두었던 모 소설 회사의 온라인 구독 1년 쿠폰을 내밀었다.
그 순간, 눈이 반짝이며 반사적으로 손이 나가던 도서부 회장은 자신의 행동에 놀라 자기 손을 마구 쳤다.
"흐...흐흠... 그... 그래서! 그게 나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데? 말 할수 있다면 어디 한번 말해보시지!"
... 거의 다 넘어온 듯 하다.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그 행동이 마치 '왕왕!! 주인님 저는 준비 되었습니다! 어서 주세요!' 라고 말하는 듯 했다.
그래서 나는 의자에 여유롭게 앉아 자세를 고치며 자그마치 5분간의 장황한(정신을 혼란시킬 수 있는) 이야기를 했다.
"~~ 그래서 말이지 이 쿠폰은 말이야 그러한 정도의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고. 오히려 형이 감사해야 할거야."
말을 마치며 회장의 얼굴을 보니 간식으로 장난치는 주인님 앞에서 맥이 빠져버린 개를 보는 것 같았다.
"아...알았어... 자 여기... 그대신 이거 딱 일주일만 빌려줄거야... 더는 안돼. 딱 일주일이야. 잃어버린다면... 으으 상상도 하기 싫다."
"염려 말아. 내가 누군데~ 그 천하의 도서 키퍼 이필운이라고."
"알고 있지만... 그래도 상상만 해도 끔찍해..."
나도 잘 알고 있거든요? 회장은 말이지 책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 강해서 그동안 못볼꼴 다 봐온 나였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한다. 그러기에 이 신비한 책은 잃어버려서는 안될 터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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학교 일과의 끝을 알리는 종이 쳤다.
그렇게 서운한 형을 뒤로 하고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신비함 가득의 이 책을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왔다.
그 날따라 하늘에 내려앉는 노을의 색깔이 유난히 붉어보였다.